*全州市 文化遺産 關聖廟 探訪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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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宋珍國 (114.♡.27.84) 작성일10-11-23 21:31 조회827회 댓글0건본문
* 全州市 文化遺産 關聖廟 探訪 4 !
日 時 : 2010年11月13日,09:00~17:00.
踏 査 : 南固山城→忠景祠→三暻寺→關聖廟→北藏臺→億景臺
→萬景臺→南固寺→全州敎大.
主 催 : 全州市 市民行動21 文化財 사랑회.
目 的 : 南固山城의 保存常態 Moniter 및 文化遺産 探訪.
人 員 : 宋 哲 孝(珍國)會員外 20餘名.
寫 眞 : 添附하였습니다.
1. 關聖廟는 三國志에 나오는 關雲長과 諸葛孔明의 影幀을 奉安하고 春秋로
祭祀 지낸다. 關聖廟의 構造를 보면 路邊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
30m 높이의 中央에 本殿이 자리 잡고 左側에는 西廡, 右側에는 東廡 等
特異한 構造로 된 韓式建物의 殿閣입니다.
2. 朝鮮末期의 畵家 소정산이 그린 三國志演義圖의 10幅 그림이 保存 되어
있다. 本殿 네 기둥에는 各各 法訓을 流麗한 筆體로 써서 걸어 놓았는데
中國의 英雄 關羽를 이 나라에 奉安한 目的 等이 記錄되어 있습니다.
(地方文化財資料 第5號).
3. 固德山 줄기에 자리잡고 있는 南固山城에 있는 關聖廟는 全州 4固鎭의
하나인 南固鎭이 있다 南固鎭 안에는 全州의 4固寺의 하나인 南固寺와
關聖廟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林業試驗場에서 固德마을 쪽으로 川邊길
을 따라 들어가면 三暻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三暻寺를지나 한참을
가다보면 村家들과 큰 정자나무가 있습니다 정자나무와 호박넝쿨에
덥힌 돌담을 지나면 關聖廟가 있습니다.
4. 關聖廟는 中國 三國志에 나오는 關羽將軍을 神으로 모신 祠堂으로 全州市
關聖廟는 全羅北道 文化財資料 第5號로서 高宗 32년(1895년)에 當時
全羅道 觀察使 김성근(金聲根)과 남고별장(南固別將) 이신문(李信文)의
發起로 各處의 有志들의 獻納金을 모아 建立되었다. 正面의 本殿 關羽
將軍의 塑像이 모셔져 있고 左側 西廡 右側 東廡에는 朝鮮末期의 畵家
소정산이 그린 三國志演義圖 10幅이 있습니다.
5. 特히 全州의 關聖廟에 가면 커다란 북이 있다. 一般 북은 나무를 半으로
쪼개어 속을 파고 다시 맞추어 북을 만드는데 이곳의 북은 큰 나무를
통째로 속을 파내어 북을 만든 통 북이 있습니다.
6.孔子의 墓를 문묘(文墓)라고 하듯이, 關羽의 墓를 무묘(武墓)라고도
하여 武의 化身으로 推仰받으며 관제묘가 祠堂 形式으로 처음 세워진
것은 명나라 말기인 1594년 무신(武神)으로 받들어지고,
명나라가 自身들의 壬辰倭亂 出征 때 이긴 것을 關羽將軍의 德이라고
여겨 세워져 中國 大陸 各地, 나아가 대만, 홍콩, 한국, 일본
等地에도 관제묘가 세워졌습니다.
7.서울 장충동 2가에 位置한 關聖廟는 朝鮮 高宗의 귀비(貴妃) 엄씨(嚴氏)에
의하여 創建 되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아니하며 每年 陰曆 正月 초하루를
비롯하여 1년에 4回 祭祀를 지낸다고 합니다.
8. 祠堂의 正面에는 18世紀 風으로 그려진 關羽 夫婦 像이 左右로 있고,
왼쪽에는 무인상(武人像), 오른쪽에는 문인상(文人像)이 걸려 있으며,
왼쪽 벽에는 將軍像, 오른쪽 벽에는 山神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9. 建物 오른쪽에는 '서남'이라 불리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으며,
문칸쪽 담안에는 높이 70cm의 단(檀)이 있습니다.
10.우리나라에는 關王廟나 혹은 關帝廟라고 하며 主로 忠淸道, 慶尙道
地方에 몇몇이 있습니다. 서울 東大門區에 位置한 "東廟"가 바로
이 關王廟입니다. 이 關王廟에는 關羽를 죽인 여몽의 性과 같은
여(呂)氏가 들어오면 아무 理由 없이 죽는다고 하는 傳說이 있습니다.
11. 하지만 關羽의 屍體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現在까지 아무도 모르며 記錄
조차 남아있지 않다. 즉 關羽의 墓는 실제 墓가 아닌 關羽의 魂魄을 모셨
다고 主張하며 墓라고 稱하는 것뿐입니다.
* 全州市 文化遺産 關聖廟 探訪 4 !
日 時 : 2010年11月13日,09:00~17:00.
踏 査 : 南固山城→忠景祠→三暻寺→關聖廟→北藏臺→億景臺
→萬景臺→南固寺→全州敎大.
主 催 : 全州市 市民行動21 文化財 사랑회.
目 的 : 南固山城의 保存常態 Moniter 및 文化遺産 探訪.
人 員 : 宋 哲 孝(珍國)會員外 20餘名.
寫 眞 : 添附하였습니다.
1. 關聖廟는 三國志에 나오는 關雲長과 諸葛孔明의 影幀을 奉安하고 春秋로
祭祀 지낸다. 關聖廟의 構造를 보면 路邊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
30m 높이의 中央에 本殿이 자리 잡고 左側에는 西廡, 右側에는 東廡 等
特異한 構造로 된 韓式建物의 殿閣입니다.
2. 朝鮮末期의 畵家 소정산이 그린 三國志演義圖의 10幅 그림이 保存 되어
있다. 本殿 네 기둥에는 各各 法訓을 流麗한 筆體로 써서 걸어 놓았는데
中國의 英雄 關羽를 이 나라에 奉安한 目的 等이 記錄되어 있습니다.
(地方文化財資料 第5號).
3. 固德山 줄기에 자리잡고 있는 南固山城에 있는 關聖廟는 全州 4固鎭의
하나인 南固鎭이 있다 南固鎭 안에는 全州의 4固寺의 하나인 南固寺와
關聖廟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林業試驗場에서 固德마을 쪽으로 川邊길
을 따라 들어가면 三暻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三暻寺를지나 한참을
가다보면 村家들과 큰 정자나무가 있습니다 정자나무와 호박넝쿨에
덥힌 돌담을 지나면 關聖廟가 있습니다.
4. 關聖廟는 中國 三國志에 나오는 關羽將軍을 神으로 모신 祠堂으로 全州市
關聖廟는 全羅北道 文化財資料 第5號로서 高宗 32년(1895년)에 當時
全羅道 觀察使 김성근(金聲根)과 남고별장(南固別將) 이신문(李信文)의
發起로 各處의 有志들의 獻納金을 모아 建立되었다. 正面의 本殿 關羽
將軍의 塑像이 모셔져 있고 左側 西廡 右側 東廡에는 朝鮮末期의 畵家
소정산이 그린 三國志演義圖 10幅이 있습니다.
5. 特히 全州의 關聖廟에 가면 커다란 북이 있다. 一般 북은 나무를 半으로
쪼개어 속을 파고 다시 맞추어 북을 만드는데 이곳의 북은 큰 나무를
통째로 속을 파내어 북을 만든 통 북이 있습니다.
6.孔子의 墓를 문묘(文墓)라고 하듯이, 關羽의 墓를 무묘(武墓)라고도
하여 武의 化身으로 推仰받으며 관제묘가 祠堂 形式으로 처음 세워진
것은 명나라 말기인 1594년 무신(武神)으로 받들어지고,
명나라가 自身들의 壬辰倭亂 出征 때 이긴 것을 關羽將軍의 德이라고
여겨 세워져 中國 大陸 各地, 나아가 대만, 홍콩, 한국, 일본
等地에도 관제묘가 세워졌습니다.
7.서울 장충동 2가에 位置한 關聖廟는 朝鮮 高宗의 귀비(貴妃) 엄씨(嚴氏)에
의하여 創建 되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아니하며 每年 陰曆 正月 초하루를
비롯하여 1년에 4回 祭祀를 지낸다고 합니다.
8. 祠堂의 正面에는 18世紀 風으로 그려진 關羽 夫婦 像이 左右로 있고,
왼쪽에는 무인상(武人像), 오른쪽에는 문인상(文人像)이 걸려 있으며,
왼쪽 벽에는 將軍像, 오른쪽 벽에는 山神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9. 建物 오른쪽에는 '서남'이라 불리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으며,
문칸쪽 담안에는 높이 70cm의 단(檀)이 있습니다.
10.우리나라에는 關王廟나 혹은 關帝廟라고 하며 主로 忠淸道, 慶尙道
地方에 몇몇이 있습니다. 서울 東大門區에 位置한 "東廟"가 바로
이 關王廟입니다. 이 關王廟에는 關羽를 죽인 여몽의 性과 같은
여(呂)氏가 들어오면 아무 理由 없이 죽는다고 하는 傳說이 있습니다.
11. 하지만 關羽의 屍體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現在까지 아무도 모르며 記錄
조차 남아있지 않다. 즉 關羽의 墓는 실제 墓가 아닌 關羽의 魂魄을 모셨
다고 主張하며 墓라고 稱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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